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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아이존은 아이들의 꿈을 위한 공간입니다.

훈육이란 이름으로, 나도 혹시 아이를 막 대하진 않았던가

‘엄마’라는 호칭은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단어다. 그래서일까? 유독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함, 포근함 같은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기 힘든 정(情)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만든 이른바 ‘의붓어머니 아동 학대 사건’으로 나는 이제 ‘엄마’라는 말이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다. 

차라리 생면부지의 남이었다면, 아이는 의붓어머니가 해왔던 고문 같은 상황들을 받아들였을까? 아이에게 행해진 끔찍한 일들과 그것이 괴로워도 따랐던 아이의 최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엄마’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 중 하나이다 보니 이번 사건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프고,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몸이 떨릴 정도다.

◇ '폭력'은 절대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것…상대가 친부모여도 아이는 '약자'다

아이를 훈육하다 보면 모두가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비교, 무시 등의 말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예삿일이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벌씌우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듣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손목 하나를 잡아도 평소와 달리 거칠게 끌어 당기게 되고, 위험한 순간을 제지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신체에 물리적 압력을 가할 때는 사실 체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일상들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후회가 밀려오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해줘야 하는 일조차 그냥 넘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이럴 때면 훈육 처음 계획과 달리 엉망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 몸도 마음도 지친다. 일말의 폭력적인 상황 없이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을 누가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참아내는 엄마도, 이해하기 힘든 아이도 모두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폭력은 ‘중독’이기 때문이다. 처음 매 맞은 아이는 그 매가 두렵고 놀란 마음에 곧잘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다음은 한 대로 끝날 수 없다. 때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작엔 미안함과 후회를 반복하지만, 점차 죄책감을 잊어 간다. 점점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이유만 늘어갈 뿐이다. 결정적으로 폭력은 절대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한 방법이며, 이 부분에 있어 아이는 상대가 친부모라 할지라도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 외롭고 아팠을 '그 아이'를 생각하며…아동학대 범죄 근절되길 간절히 바란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부모조차 믿을 수 없는 아이의 영혼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까. 다시 한번 고통 속에 떠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여상미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부모조차 믿을 수 없는 아이의 영혼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까. 다시 한번 고통 속에 떠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여상미


누군가는 사춘기 이전까지의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세상 전부라고 한다. 이후에는 친구, 동료, 선생님 등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이들과도 인연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전의 아이들 세계에서는 부모가 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일부 옳지 못한 생각을 하는 부모들, 평범한 부모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들의 ‘절대자’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악인으로 둔갑한다. 절대적인 악이 지배하는 세계가 곧 가정이고, 그러한 권한을 가진 이가 부모인 아이들에게는 복종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끔찍한 학대를 일삼는 부모로부터 왜 도망치지 않고, 주위에도 알리지 못하고 죽어갔느냐고 궁금해하는 이가 있다면 다시 한번 위의 이야기를 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족이 가해자인 아동 학대, 가정 폭력의 경우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관련 전문가들 역시 반복해서 강조하는 부분이다.

사랑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함부로 대했던 나의 행동이 그 어느 순간보다 부끄럽다. 그러나 가정, 특히 부모와 아이 사이를 제재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서, 또 부모를 위해서라도 간섭 아닌 간섭과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며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의무가 되어버렸으니 이제 가정에도 CCTV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CCTV도 사각지대가 있으니 이번 사건과 같이 아이가 전혀 예상할 수도 없는 곳에 갇혀 있었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테니 이러나저러나 씁쓸하기만 한 생각이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부모조차 믿을 수 없는 아이의 영혼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을까. 다시 한번 고통 속에 떠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부디 다시는 엄마, 아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아동 학대! 반인륜적인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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